HIFICLUB, High-end Internet

요즘 CH, CH 하고 말이 많다. 소개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문의 전화도 많고, 직접 듣고 싶어하는 애호가들도 적지 않다. 이번에 동사의 C1을 리뷰하게 되었으니, 그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가도록 하겠다.

우선 대체 CH가 무슨 뜻인지 알아보자. 정확히는 “CH Precision”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CH의 의미를 알기 힘들다. 그러다 최근에 창업자들에 의해 그 내용이 밝혀졌다. 그 진실 또한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다. 바로 두 창업자의 이름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플로리언 코시이고, 또 한 사람은 티에리 히브다. 코시와 히브의 첫 글자에서 각각 따와 CH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CH가 또 스위스의 국가 코드이기도 하다. 게다가 프리시젼이라는 말은, 상당히 정교한 작업 공정을 연상시키는 바, 시계라던가 정밀 공업이 발달한 이 나라의 이미지와 부합되기도 한다. 

사실 CH의 역사를 논하고자 한다면, 최근 약 20년에 걸친 스위스 오디오 산업의 전반을 언급해야 한다. 이 부분만 떼어놓고 별도의 아티클이 필요할 만큼 복잡하기는 하지만 알아둘 필요는 있다. 왜냐하면 이 회사가 단순히 CH로 끝나는 게 아니라, 멀리는 골드문트를 비롯해서 애너그램, ABC PCB 등이 등장하며, 조연으로 솔루션, 다질, 오디오 에어로, 카멜롯 테크놀로지 등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소용돌이의 중심에 바로 CH를 이인삼각으로 이끌고 가는 코시와 히브가 있다는 점을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

이 대목에서 잠시 이들의 초기 시절을 언급해야겠다. 코시가 스위스의 명문인 로잔 공대에 다닐 무렵, 오디오에 관심이 많았던 관계로 리복스와 레가 등의 AS를 아르바이트로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같은 동네의 살던 한 살 연상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가 바로 히브다.  이미 그는 골드문트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그와 관련된 일을 역시 아르바이트로 의뢰한 것이다. 이게 인연이 되어 코시는 졸업하자마자 일종의 특채 형식으로 이 회사에 입사한다. 그게 1996년이다. 이후 약 4년간, 두 사람은 많은 모델에 관여하게 된다. 코시가 주로 아날로그 앰프 관련이었다면, 히브는 DAC와 같은 디지털 계통에 몰두했다. 그러다 자신들만의 제품을 만들고자 독립한 것이 2000년 무렵이고, 이때 애너그램이라는 회사를 만든 것이다. 

처음에는 돈이 없어서, 기술력을 파는 쪽으로 시작했다. 곧 입소문이 나서 많은 회사들이 의뢰를 했다. 어떤 회사의 경우, 제품 설계의 50%까지 커버한 적도 있다. 이게 와전이 되어 모든 스위스 회사들이 바로 여기의 신세를 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따지고 보면 완전 거짓은 아니다. 또 단순히 몇 퍼센트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찌 보면 자사에서 도저히 풀 수 없는 숙제를 의뢰한 것이 되니, 일종의 핵심 기술을 담당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다 애너그램에서 산하에 오르페우스를 만들었다가 판 일이나, 나중에 ABC PCB를 창업하고 또 매각한 일 등은 상당히 복잡한 내용이니 생략하자. 대체 왜 CH를 만들었느냐가 더 중요하니까. 바로 자기만의 제품을 만들고 싶어서다. 아주 간단하다. 자신들이 설계해준 기술로 다른 회사들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돈도 많이 버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지낼 수 없다는, 일종의 불끈한 마음이 CH를 만든 것이다. 하긴 그러려고 처음에 골드문트를 나온 게 아닌가. 그리고 그 시도는 아주 멋지게 들어맞았다.

정확히 2009년부터 CH는 한 해에 한 개씩의 페이스로 신제품을 만들어왔다. 첫 작품은 CD 및 SACD 트랜스포트인 D1이고, 이어서 C1이 나왔다. C1을 더 소상히 말하면 DAC 및 프리앰프를 한데 합친 포름으로, 그 다음에 나온 파워 앰프 A1과 짝을 이루게 된다. 그러니 전체적인 로드 맵이 이미 창업 초기에 CH에 있었다는 말이 되고, 그 흐름이 소스부터 파워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해서 재미있다.

자, 그럼 C1이 표방하는 제품 컨셉은 무엇인가? 아주 심플하면서 중요한 명제를 다루고 있다. 입력된 디지털 데이터를 두 가지 측면에서 정확하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바로 타임과 인포메이션. 즉, 정보량의 손실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이것이 정확한 타임 그러니까 클록이라는 측면에서도 일체 하자가 없이 전달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C1이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변환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측면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없을 듯하고, 이를 위한 갖가지 조치는 자세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C1의 가장 큰 미덕은 일종의 모듈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것이 여러 스테이지를 각각 나눠서 모듈 방식으로 만든 데에 그치지 않는다. 실은 입력단 자체도 무려 3개의 옵션으로 구성되어,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게 해놨다.

두 번째는 스트리밍 오디오를 위한 입력단이다. 이것은 이더넷을 베이스로 해서 전송하는 바, 다양한 고음질 파일을 소유한 분들이라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다.

세 번째는 라인 레벨의 아날로그 입력단이다. DAC에 아날로그 입력이라니, 이 무슨 말인가 의아할 분이 있을 것이다. 실은 본 기의 볼륨단은 무척 정성스럽고 세심하게 제작되어 있다. 특히,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적절하게 섞어서, 어지간한 프리앰프 못지 않다. 그러므로 아날로그 입력단을 넣을 경우, 본격적인 프리앰프의 기능도 가능하다. 따로 프리를 구할 필요가 없으니 상당히 솔깃한 제안이다.

자, 이렇게 입력된 디지털 신호를 어떤 프로세싱으로 처리하냐는 본 기의 중요한 과제에 속한다. 이를 위해 CH는 “4.8GFLOPS”라는 독자적인 DSP 엔진을 만들었다. 어찌 보면 애너그램부터 이어져 오는 동사의 노하우는 바로 이 DSP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엔진의 첫 번째 임무는 입력된 데이터를 어마어마한 스펙으로 오버 샘플링하는 것이다. 따라서 DSD 혹은 PCM에 따라 705.6KHz 내지는 768KHKz로 변환된다. 이것을 “CH-HiD Processing”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은 채널마다 할당된 네 개의 R-2R 컨버터와 연결된다. 엄청난 물량 투입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이 바로 아날로그 스테이지. 아무리 뛰어난 디지털 기술을 갖고 있어도 결국 아날로그로 변환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노하우가 없으면 다 무용지물이다. 이를 위한 대책 역시 잘 되어 있다.

우선 눈에 띠는 것은 일체의 OP 앰프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자적인 디스크리트 회로를 구축해서, 정확하면서 음악성이 풍부한 아날로그 출력단을 구축하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음성 신호의 전달 과정을 되도록 짧게 처리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음성 신호가 전달되는 경로에 일체의 캐패시터가 개재되지 않는 점은, 요즘 하이엔드 앰프의 목표와 일치해서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한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다소 호화스런 라인 업이 동원되었다. 스피커는 윌슨 베네시의 플래그쉽인 카디널을 동원했고, 그 나머지는 D1~C1~A1으로 이어지는 CH 패밀리가 맡았으며, 전원 공급 장치인 X1까지 추가로 도입되었다. 참고로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첫 곡으로 들은 베토벤 9번 교향곡 중 마지막 악장. 이 악장은 실제 두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바리톤이 등장해서 본격적인 합창이 이뤄지는 후반부를 들었다. 과연 넘쳐나는 음성 정보에 맑고, 투명하며, 군더더기 없는 음은 메이드 인 스위스라는 느낌을 강하게 인식시킨다. 무엇보다 이 럭셔리함이라니! 단순히 음을 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고급스런 질감과 분위기가 존재한다. 마치 귀족이 되어, 콘서트 홀의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있는 기분이다. 코러스를 이루는 다양한 성부의 분리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어서 라흐마니노프는 이상하게도 들을 때마다, 영화 《닥터 지바고》가 떠오른다. 황량하고, 고독한 시베리아 벌판을 연상되는 것이다. 그래서 낙엽이 떨어지는 시즌에 들으면 더 없이 우수에 차게 된다. 바로 그런 느낌이 잘 전달되고 있다.  분석적으로 들으면, 왼손과 오른손의 컴비네이션, 다양한 페달링의 표현, 약동하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조화 등, 별로 토를 달 만한 내용이 없을 정도로 매끈하다. 이게 과연 디지털이 내는 음일까 놀랄 정도다. 무엇보다 이 깊고 풍부한 음악성에 먼저 주목하고 싶다. 데뷔작으로 이런 음을 낸다는 것은 역시 CH가 오랜 내공을 가진 회사라는 것을 충분히 각인시키고 있다.

카산드라 윌슨의 노래는 다소 주술적이다. 나른한 어쿠스틱 기타의 반주에 맞춰 주문을 걸듯 서서히 보컬이 나온다. 원곡의 완벽한 재해석으로, 마치 다른 곡을 듣는 듯하다. 기타 통의 풍부한 울림이나 낮고 그윽한 보컬의 잔향 등, 눈을 감고 들으면 그대로 빨려 들어갈 만큼 흡인력이 강하다. 중간에 짤막하게 나오는 바이올린 솔로는 무척이나 환각적이다. 그대로 눈을 감고 계속 음악을 듣고 싶어진다. CD에서 이런 깊이와 아름다움이 표출된다는 것은, 이제 이쪽 관련 기술이 정점에 다다랐구나 깨닫게 한다.

마지막으로 플리트우드 맥의 초창기 블루스 넘버 《Need Your Love so Bad》를 듣는다. 그리 좋은 녹음이 아니지만, 여기서 충분히 그 맛이 살아나고 있다. 피터 그린이 리드 기타를 치고 또 노래하는 구성인데, 화이트 맨 블루스 특유의 감칠맛이 좋다. 왼쪽 채널을 점거한 스트링스의 화려하면서 구성진 백업은 곡에 더할 나위 없는 낭만을 선사한다. 정말 좋았던 옛 시절의 곡을, 아무런 가감없이 기분좋게 재생한다. 이런 내공이 있는 제품은 흔치 않다. 특히 카디널과의 매칭이 좋은 듯 싶은데, 나중에 알고 보니 두 회사가 쇼에 나갈 때 부스도 함께 사용한단다. 어쩐지. 새삼 CH의 존재가 심각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