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이 브랜드의 성장이 느껴지고, 여기저기에서 애호가들이 생기고 있는 터라, 솔직히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는 했다. 만일 시간이 좀 있다면, 직접 제작자를 방문해서 음을 듣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KT120을 쓴 《크리스틴》이라는 모델을 만나게 되어 직접 리뷰하게 되었으니, 일단 마음이 설렌다. 뭔가 그간 궁금했던 것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인 데다가, 만일 음이 좋다면 개인적으로도 무척 즐거울 것 같다.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여기서 일단 음을 들은 인상을 말하면, 상당히 꼼꼼하고 정교하게 잘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많은 메이커들이 실패하는 밸런스라는 부분에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이 밸런스라는 것은 단순히 고음, 중음, 저음의 조화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악기와 보컬간의 밸런스도 있고, 악기끼리의 밸런스도 있다. 주역이 되는 악기와 보좌하는 악기간의 밸런스도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은 무수하게 만들어보고, 모니터링하고 또 수정하면서 얻게 되는 일종의 내공이다. 따라서 오디오 설계자라면 무조건 양질의 콘서트를 자주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오디오에서 듣는 음만 갖고 결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작자가 어떤 공부를 했는지 모르지만, 이 밸런스라는 측면에서 일단 만족스러웠으므로, 그 나머지 부분은 아주 쉽게 판단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이 관은 최신관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텅솔에서 최근에 개발되어 널리 알려진 것이다. 보다 저렴하게는 러시아 생산품도 있으므로, 관의 수급이 용이하다. 덕분에 옥타브, 오디오 리서치, 코플랜드, 레벤, 에이온 등 난다긴다하는 진공관 메이커에서 앞을 다퉈 쓰는 형국이 되었다. 서병익 오디오에서도 그 진가를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이미 2009년부터 채용하고 있다.

 

실제로 이 회사의 라인 업을 보면 이미 2011년에 푸시풀 방식을 채용한 칼리오페라는 파워 앰프를 발표해서 크게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단, 동사의 방침은 출력관의 구동에 여유를 주기 위해, 약 70%의 힘만 쓰게 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관의 수명도 길어지고, 안정성도 높아진다. 또 그 정도만 써도 어지간한 스피커는 충분히 구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 결과 칼리오페는 60W 정도에서 그치고 있는데, 그 배후에 숨은 힘 같은 것을 분명이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한 모델은 푸시풀이 아닌 싱글 엔디드 방식의 인티로 마무리했다. 싱글 엔디드? 과연 KT120에서 싱글 방식의 깊은 맛이 가능할까? 놀랍게도 본 기를 들으면 그 경지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 점이 본 기가 갖는 최대 메리트라 하겠다. 

또 하나 언급할 것은 두 개의 출력 방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바로 울트라와 리니어 방식이다. 출력을 좀 높인 전자에 비해 후자는 투명도와 해상도를 높였다. 덕분에 전자가 22W, 후자는 16.5W다. 자신이 가진 스피커에 맞도록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진공관 앰프의 출력은 TR 방식과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22W라 해도, TR에서 말하는 200W가 전혀 부럽지 않다. 

싱글 엔디드 방식이 음질 중심은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전류가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기 때문에, 출력 트랜스가 자화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푸시풀 방식은 서로 밀고 댕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런 부분에서 자유롭다. 이를 위해 동사는 물량투입이라는 정공법으로 맞서고 있다. 즉, 출력 트랜스의 크기를 늘리고, 코어의 사이즈도 더 대형화시킨 것이다. 덕분에 이런 우려를 말끔히 지워낼 수 있었다.

본 기의 제품명은 “크리스틴”(Christin)이다. 오페라 《유령》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왔다. 실제로 음을 들어보면, 적절하게 멜랑콜리하면서 달콤한 느낌이 우러나온다. 빈티지의 풋풋한 느낌과 하이엔드의 스피디한 반응이 결합되어, 매우 내공이 높은 음이 나오는 것이다. 참으로 오랜 기간 진공관을 만지며 다져진 솜씨가 KT120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만나 활짝 만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청을 위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하베스의 신작 HL Compact 7 MK3의 동사 창립 35주년 기념 모델을 준비했다. 과연 최상의 매칭을 보여 시청 내내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소스기는 오렌더 W20에 브리카스티 DAC M1의 조합이다. 참고로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우선 베토벤부터 보자. 브리티쉬 사운드의 맹주 하베스와 진공관 인티의 매칭이므로, 여기서 어떤 음이 나올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나오는 음은 매우 다르다. 충실한 중역대의 재생은 기본이지만, 고역이 더 개방적이고, 묵직한 저역도 꽤 만족스럽다. 반응이 빠르고, 시원시원하며, 묘한 멜랑콜리같은 느낌도 숨어 있다. 그야말로 브리티쉬 사운드의 현대판이면서 보다 퀄리티가 높은 음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관악기가 쏘거나 현이 날카롭거나 하는 현상은 보이지 않는다. 해상도도 좋지만, 너무 나무의 묘사에 몰두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밸런스가 빼어나서, 오케스트라의 모습이 짜임새 있게 그려진다. 일단 스피커와 앰프의 매칭이 상당히 좋다는 느낌이 든다.

Martha Argerich, Chailly Kondrashin - Piano Concerto No.1

Tchaikovsky: Piano Concerto
이어서 차이코프스키를 보자. 서주 부분이 매우 다이내믹하고, 광대한데, 그런 호방한 스케일이 충분히 나온다. 특히, 피아노에 있어서 뭔가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듯 화려한 터치와 깊은 울림은, 그랜드 사이즈의 느낌이 확 와 닿는다. 하지만 절대 진솔하게 드러내는 음은 아니다. 약간의 스위트한 감각이 있어서, 음 자체가 참 맛있다. 절로 미소가 나오는 재생이다. 당연히 오래 들어도 물리지 않는다.

Spandau Ballet - True

Spandau Ballet - True
마지막으로 팝 넘버. 무엇보다 신디사이즈를 많이 쓰고, 오버 더빙이 많은 녹음이라, 이런 조합에선 금기시되는데, 실제 들어보면 별 무리가 없다. 오히려 몽실몽실 무대 전면을 장악하는 신디의 아련한 음향에 강한 침투력을 가진 보컬이 나오면 별 저항없이 몰두하게 된다. 특히, 강력한 베이스 라인과 킥 드럼의 음향은, 팝 특유의 단순명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확실히 브리티쉬 사운드의 강점을 지켜가면서도 더 개선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비단 스피커만의 성능은 아닐 것이다. 그 점에서 본 기를 더 많은 스피커와 매칭해서 들어보고 싶어진다. 일단 하베스와의 매칭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으므로, 매우 인상적인 시청이었다고 말하고 싶다.